2018년 7월 27일 금요일
22/29도
맑음
새벽에 짐을 부랴부랴 쌌다.
편지도 부랴부랴 썼다.
그리고 몇 개는 이미 받았음.
다 쓰고 나니 많은 것들이 스쳐 지나가고 마무리가 되어가는 기분이 들어서 좀 우울해져서 밖을 나왔다.
3시 반인데 벌써 하늘이 밝아져오는 홋카이도.
내일 고등학교 친구와 도쿄에서 만나기로 해서 공항 버스를 알아보는데 갑자기 한 달이 지났다는 현실을 자각하며 내가 한국에 두고왔던 친구들과 환경과 현실들이 확 다가왔다.
뭔가 술 취해 있다가 갑자기 깬 것처럼.
맥주를 마시고 잠에 들었다.
마지막 아침식사
마지막 수업일. 고라파덕을 납치당했다.
그리고 마지막날까지도 수업은 변함없이 재미없었다 ^^
돈지루와 함께하는 마지막 점심 ^^
여자 기숙사의 누가 열쇠를 잃어버렸는데 수리비로 12000엔 (12만원)을 달라고 했다고 한다.
보안 때문에 문을 새로 달아야 한다고.
애초에 사람이 사는 집 같지가 않았지만 ㅎㅎ
오후에는 마지막 기념행사가 있었다.
받았다. 우리나라의 영미~처럼 일본에서 유명한 컬링 팀으로 안다.
외에도 학교에서 물병도 받았다.
다같이 선물과 편지를 교환하고 기념 사진을 찍었다.
학교도 이제 빠이
고라파덕이 미아가 되었다.
마무리 행사가 끝나고 다같이 뒤풀이를 하러 삿포로 시내로 향했다. 태풍이 온다는 예보와 달리 비껴 지나갔는지 늦춰졌는지 날이 맑고 삿포로 답지 않게 매우 무더웠다.
저녁에 있는 불꽃놀이도 진행된다고 들었다.
삿포로 기린 비루엔 (ビール園 도착)
홋카이도의 전통요리? 인 징기스칸을 먹었다.
대충 양고기 구이
즐겁게 밥을 먹던 것도 잠시, 나와야 할 시간이 다 되어가고 사람들끼리 사진을 찍고 있자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울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시간은 짧고 오늘이 마지막이고 아쉬움이 그만큼 많기 때문에
한국 일본 할 거 없이 사람들이 그냥 눈물바다가 됐다.
흐뭇 ^~^
그렇게 다같이 울고불며 불꽃놀이를 보러 나왔다.
그런데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거리는 축제를 즐기러 온 사람들로 넘쳐났고 그렇게 사람들은 인파에 떠밀려 인사도 못한 채로 갈기갈기 찢겨졌다.
나도 다른 많은 사람들 (특히 다시 언제 볼지 모르는 사람들)과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그렇게 헤어지고 정신을 차려보니 한국 사람 몇과 다니고 있었다.
츠XX 형이랑 딱 붙어 있었는데 중간에 완전 찢겨저버려 통화로나마 인사했다. ( 전화도 사람이 많아 잘 안 잡혔다.)
축제의 노점
신사
그렇게 지하철을 타러 왔는데 지하철도 사람이 미어터졌다.
마지막 기념 사진
그리고 삿포로 역에 도착에서 숙소로 가는 사람들과 공항으로 가는 나는 헤어졌다.
공철 탑승
그렇게 갑자기 나 혼자가 되었다.
공항은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국내선이라서 그런가 정말이지 적막했다.
나 혼자뿐이었다.
난 노숙 준비를 하기 위해 구석에 자리를 적당히 잡았다.
내 인생 첫 노숙이었다.
나와 한 달 간 함께 한 소울메이트
사람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정말 많은 선물들을 받았다.
그리고 잘 준비를 하다가 쫓겨나서 국제선으로 이동했다.
온천이 앞에 있는데 다같이 노숙을 하는 부익부 빈익빈
홋카이도에 있을 동안 이런 노래들을 들었다.
그렇게 나는 북해도를 떠났고, 북해도에서의 생활도 막을 내리게 되었다.
당시 갓 스무살이던 내게 있어서 두 번째 외지 생활이었는데 매사에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지금 내가 돌아보면 항상 아쉬운 일 투성이이다.
열차타고 왓카나이나 네무로도 가보고 술도 더 많이 마시고 더 열심히 돌아다녔어야 하는데 당시엔 그러지 못했다.
사진도 찍을 생각도 별로 못했었고.
그래도 마지막 한 주 만큼은 열심히 놀았었고, 마지막에 불꽃놀이를 보며 공항으로 떠나는데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떠오르며 만족스러운 마무리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많이 부족했기에 내가 성인이 되어 걸어온 다른 길, 경험들보다 더 특별하고 값진 기억이라고 생각한다.
미숙하기만 한 내게 가장 큰 인생의 전환점이 된 북해도. 꼭 다시 가보고 싶다. (코로나 나쁜놈...)
사실 벌써 3년이 다 되어 적으려니 기억이 나지 않거나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기억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글을 적을 때 기억을 떠올리느라 고생을 하였고 적고 싶은데 앞뒤가 떠오르지 못해 못 적을 말들도 많다.
북해도에서 만났던 우리 학교 사람들, 일본 삿포로가쿠인 대학 친구들, 친했지만 언급은 별로 못한 호주 친구들, 외 관계자 분들과 기타 등등등... 많은 사람들의 신세를 졌다.
이후에 한국에 돌아와서 지금까지도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도 있고 데면데면한 사람이 있으며 연락이 끊긴 사람도 있다.
일본 친구들의 경우도 연락을 안 하는 경우가 있으며 한국에 놀러와줘서 같이 놀러다닌 사람도 있고 오히려 이 때는 몰랐다가 나중에서야 알게되어 친해지게 된 사람도 있다.
그리고 자퇴를 고민하고 반수를 준비하려던 나는 8월에 한국으로 돌아와 본격적인 수험생활을 시작했다.
학교는 학기를 마쳤기 때문에 굳이 자퇴하지는 않았다.
공부야 원래부터 열심히 하고 잘 하던 것이었으니 문제는 없었고 지난 수능처럼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가 나왔다.
하지만 시험 전날 자려는데 몸이 너무 아픈 것이었다.
열이 나면서 내일 어떡하지 생각에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결국 한두 시간 정도 밖에 못 자고 국어시간에 시험을 풀다가 자버렸다.ㅎ
정신을 차려보니 20분이 남았는데 20문제가 남아있었다.
(웃긴 건 그래놓고 다른 과목들은 다 잘 봄)
그렇게 아무일도 없게 되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망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난 오늘 저녁은 작년처럼 곱창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는 과거에 너무 얽매여 있었다는 것을.
나의 고등학교 생활은 외롭고 힘겨운 싸움이었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하루라도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
그렇기 때문에 잘 못 지낸 만큼 더 열심히 공부해서 더 좋은 대학을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그것도 당연히 맞는 말이다.
하지만 세상이 전부 내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안 되는 일도 있는 법이다.
이제는 전부 잊어버리고 이 다음의 내 삶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를 옥죄여 오던 사슬 하나를 벗어던졌다.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난 내가 된 것이다.
그렇게 수능이 끝나자마자 첫 알바 자리를 구해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고민해보며 조금씩 실천해 나갔다.
그러면서 성격이 호기심이 강하고 도전적인 사람으로 조금씩 바뀌었다.
또 나의 성격도 과거의 나를 갉아먹던 어두운 면들을 뒤로하고 예전처럼 밝은 모습으로, 혹은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어갔다.
그렇게 방학을 보내고 나는 우리 학교에 새로 입학하는 마음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하여간 이렇게 내 인생의 제일 큰 전환점이 된 북해도일기도 이것으로 마무리!
도쿄 여행과 유럽 여행으로 이어집니다. 갑사합니다 ^~^
+ 1달짜리 일기를 적는데 인생의 여유가 없어 6개월이나 걸렸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열심히 적다 나중엔 날림으로 적은 점 죄송합니다.
그리고 기록용으로 적기 시작했었는데 생각보다 열심히 읽어 주시는 분들이 있어 마지막만 좀 다듬어 보았습니다.
별 것도 아닌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도롱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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